투키타
구멍 뚫린 숟가락으로 냄비를 휘휘 저으며
"누구에게 눈을 뽑혔습니까?"
맹인은 다정한 미스를 지으며 말했다.
"뽑히다니요...원래 없었습니다요."
처절하고 끔찍한 싸움 끝에 잔인하게 눈알이 뽑혔을 거라고 나름대로 단정하고 있던 인만은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최근 그가 목격한 소름끼치는 행위는 모두 인간이 자행한 일들이었기
에, 인간이 초래하지 않는 불행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쩌다 맹인이 된 겁니까?"
인만이 물었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그것 참, 정말 담담하시군요. 가장 중요한 감각을 평생 빼앗긴 사람치고는 말임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보고 나서 빼앗겼다면 더 끔찍했겠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눈을 10분만이라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면 돈을 얼마나 내겠습니까?
물론 큰 돈을 내겠죠?"
그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 혀로 입술을 핥다가 입을 열었다.
"한 푼도 내지 않을 거요, 증오심이 생길까 봐 겁이 나거든요."
"...나도 그렇습니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너무 많이 봤거든요."
맹인은 네모난 신문지를 뿔 모양으로 접더니 삶은
땅콩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인만에게 땅콩을 건네주며 말했다.
"자, 앞이 안 보였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한 가지만 말해 보구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인만은 머뭇거렸다. 맬번힐, 샤프스버그, 피터스버그, 세
곳 모두 기억에서 지워내 버리고 싶은 곳들이다. 하지마 프레드릭스버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전
투였다. 인만은 참나무에 기대어 앉아 젖은 땅콩 껍질을 벗기고 땅콩을 반으로 쪼개 입으로 던져
넣으며 맹인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아침 서서히 걷히고 잇는 안개 사이로 깊숙이 파진 참호가 있는 돌담을 향해 언덕을 올라
오는 병력을 발견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돌담 뒤에 먼저 자리잡고 있던 병사들과 합
류하라는 명령을 받은 인만의 연대는 메리스 하이츠 언덕 위에 있는 흰색 대저택을 따라 진영을
만들었다. 리 장군, 로스트리트 장군, 그리고 깃털로 몸을 둘러싼 스튜어트 장군이 현관 앞 잔디
밭에 서서 번갈아 가며 망원경으로 강 건너편을 살펴보면서 저술을 논의하고 있었다.
롱스트리트는 어깨에 희색 양털을 걸치고 있었는데 다른 두 사람과 비교하면 그는 마치 뚱뚱한
돼지몰이꾼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지껏 리의 작전을 지켜본 인만 으로서는 롱스트리트의 지휘를
받는 편이 훨씬 나았다.
롱스트리트는 멍청해 보이기는 했지만 몸을 숨길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서 적을 대량
사살할 수 있는 공격 지점을 찾아낼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프레드릭스버그에
서 벌어졌던 전투는 리의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았지만, 롱스트리트입장에서는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진영을 갖춘 인만의 연대는 산 언 저리를 거쳐 북군의 총알이 간간이 날아오는 지점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멈춰 서서 한 번의 일제 사격을 가한 뒤, 돌담 뒤에 잇는 푹꺼진 길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 총알 한 발이 인만의 손목을 스쳤지만, 고양이가 혓바닥으로 핥는 듯한 느낌만 들었을 뿐
큰 상처는 남기지 않았다.
푹 꺼진 길에 도착한 인만은 자신과동료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이곳을 지키고있던 사람들이 단단한 돌담을 따라 참호를 파놓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서 있는 상태
로도 안전하게 몸을 술길 수 있었다.
북군이 이 담 까지 오려면 넓은 평지를 거쳐야 했다. 위치가 아주 만족스러워 한 병사가 담위
에 뛰어 올라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 "너희들 실수하고 있는거야. 내말 들려? 끔찍한
실수를 하고 있다니까!"총알들이 날아 오자 이 병사는 참호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 춤을 췄다.
추운 날이었다. 길가의 진흙은 회반죽 상태로 거의 얼어붙어 있었다. 맨발인 사람도 있었다. 대
부분 집엣 풀로 염색한 칙칙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들판에 늘어서 있는
북군은 모두 새옷을 입고 있었다. 공장에서 만든 밝고 반짝이는 군복과 새 부츠였다.
북군이 진군해 오자 담벼락 뒤에 잇던 병사들은 사격을 미룬채조롱만 퍼부었다. "좀더 가까이
와 봐, 부츠를 갖고 싶으니까"라고 소리를 지르는 병사도 있었다. 북군이 20보 정도 떨어진 곳까
지 다가오자 담벼락 뒤의 병사들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거리도 가까웠고 적들도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기 때문에 단 한발로도 여러 명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주가 여러 발을 쏘는 것은 화약 낭비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총알을 장전하느라 앉아 있던 인만은 총성은 물론 총알이 적군의 몸에 박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인만의 옆에 있던 한병사는 너무 흥분했는지, 아니면 너무 지친 탓인지, 총신에 달린
탄약 꽂을대를 빼놓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상태에서 발사된 꽂을 대를 가슴에 맞은 한
북군 병사는 뒤로 나가 떨어졌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의 숨결에 따라 그 깃 없는 화살이 부
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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